얼마 전에 작심하고 ‘즐거운 무민 가족’ 세트 8권을 다 읽었습니다. 어렸을 적 그 중 한 권을 읽고나서 간직하던 여운과, 그림책 3권, 동화책 9권, 그리고 영화 2편(DVD ‘무민가족의 한여름 대소동’, 극장판 영화 ‘무민 더 무비’)까지 다 보고 나서 갖게 된 느낌은 조금 다르더군요. 물론 똑같은 이야기라 해도 아이가 느끼는 감정과 어른이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죠. 어렸을 적에는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신기한 외국 음식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돌았고, 모험의 순간순간마다 손에 땀을 쥐며 다음 장을 넘겼으며, 보물을 찾으면 함께 눈이 부시고, 상황이 꼬이면 함께 억울해했지만, 아무래도 어른이 되면 동화의 세계마저 조금은 분석적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것같습니다.
우선 8권 세트를 처음 받았을 때, 책 표지가 무지개처럼 구성되어있어 보기에 참 좋았다는 얘길 해야겠네요.(전집 박스에 책이 꽉 끼는 바람에 박스의 왼쪽은 위아래가 찢어져서 테이프를 붙이는 가슴아픈(?) 일은 있었지만요...)
물론, 이야기의 순서는 위 사진과 좀 다릅니다. (이 구성에는 들어있지 않은 무민 가족과 대홍수 의 뒤를 잇는) 첫 번째 이야기는 무민과 스노크 아가씨가 만나게 되는 무민골짜기에 나타난 혜성 (위 사진의 맨 왼쪽 첫번째), 그 뒤로는 마법사의 모자와 무민 ― 아빠 무민의 모험 ― 무민 골짜기의 여름 ― 무민 골짜기의 겨울 ― 무민 골짜기의 친구들 ― 아빠 무민 바다에 가다 ― 무민 골짜기의 11월 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네요. 이 순서가 정답이라고 우길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시간적 전개는 이렇게 되는 게 제일 무난할 듯합니다.
그리고, 시리즈 동화나 시리즈 소설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무민 가족의 집이 있는 곳이 어디쯤에 어떤 지형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가 책의 앞과 뒤에 나와있구요.
내용을 보면, 무민 가족이 얼마나 화목하고 행복한 가족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대화들이 군데군데 나옵니다. 아빠 무민이 접시를 깨뜨리면 엄마 무민은 화내는 대신 ‘잘 깨진 거예요, 너무 못생긴 접시였거든요.’라고 하죠. 무민트롤이 친구들과 밖에서 점심을 먹겠다고 조르면 맛있는 음식들을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주는 엄마 무민은 항상 포근하고 따뜻한 엄마의 상징같습니다. 무민트롤이나 스니프같은 친구들도 툭탁거리며 다투기는 하지만 금방 화해하고 다른 관심사로 넘어가서 즐겁게 놀구요.
그런 동화 같은 행복감 외에도삶의 질곡이나 강박 관념, 불안감에 대한 부분들이 가끔씩 등장해서 아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무민 골짜기의 친구들’이라는 책에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닌니라는 여자아이가 나오거든요. 친척아주머니 집에서 지내는 동안 계속 무시당하고 구박을 받은 끝에 몸이 점점 투명해져 결국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아이죠. 나중에 엄마 무민의 보살핌과 주변 친구들의 도움으로 모습을 되찾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어쩌면 요즘 학교나 사회에서 심심찮게 언급되는 ‘따돌림’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라 인상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제목에서 ‘들쭉날쭉’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책 8권이 주는 재미와 감동이 한결같지는 않기 때문인데요, 차이가 제법 심하답니다. 사실, ‘무민 더 무비’를 보면서도 ‘이게 유아동용 애니메이션 맞아?’라고 당혹해했던 것처럼, 이 8권 안에도 유치원이나 초등학생용 동화라고 보기에는 너무 철학적이고 심오한 이야기들이 제법 등장하거든요. 특히 ‘무민 골짜기의 친구들’을 들여다보면, 아빠 무민의 방랑벽이나 필리정크 아줌마의 강박 장애, 꼬마 용에 대한 무민의 일방적 우정과 그에 대한 좌절감 등등, 동화로서는 파격적이라 할만한 내용들이 차고 넘칩니다. 그래도 ‘무민 골짜기의 친구들’이 옴니버스 방식이라면, ‘아빠 무민 바다에 가다’나 ‘무민 골짜기의 11월’은 아예 한 권 전체를 그런 강박 장애를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로 채워놓아서 읽다보면 어른인 저도 좀 지치더군요. 글쎄요, 애들은 오히려 더 좋아할까요?
결론적으로, 아이들이 나중에 재미있는 동화로 추억할만한 예쁜 이야기를 원하신다면, 저는 ‘무민 골짜기에 나타난 혜성’이나 (특히) ‘마법사의 모자와 무민’을 추천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다소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도 좋겠다고 하신다면, ‘아빠 무민의 모험’도 괜찮을 것같구요. 하지만, 나머지 책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좀 무리가 아닐까 싶네요. 무민 동화를 중고생에게 읽으라고 권하기는 좀 이상하지만, 제가 보기에 나머지 책들은 초등학교 5,6학년 이상, 어쩌면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 정도부터 읽는 게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예쁘고 재미있는 무민의 이야기를 읽었던 아이들이 무민 세계의 또 다른 면을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말입니다.
사족 1) 원작자의 변덕이었는지, 번역자의 실수였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 적 읽었던 ‘즐거운 무민네’ 책에서는, 거대한 루비를 가진 작은이들이 ‘토프스란’과 ‘비프스란’이었는데요, 이 8권 세트의 ‘마법사의 모자와 무민’에서는 ‘팅거미’와 ‘밥’으로 나오네요. 예전 (저 어릴 적 읽었던) 책의 번역자의 실수였을까요? 추억을 더듬는데 아주 약간의 불협화음이...^^;
사족 2) 정말 사소한 관심이긴 한데, 이 책 앞뒷표지 안쪽에 나오는 무민골짜기 지도를 보면 무민네는 뾰족한 지붕을 가진 원통형 2층집입니다. 뒷표지 안쪽 지도에는 심지어 건물 청사진(?)까지 나오거든요.(위 사진 참조) 그리고, 무민 가족과 대홍수 의 맨 뒷장에도 마찬가지구요.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아빠 무민이 증축이라도 하셨는지 요즘 나오는 그림책과 (심지어) 영화에서는 다들 3층집으로 나오네요. 그림에 통일성이 좀 있으면 좋겠어요. 저같은 어른이나 꼬치꼬치 따지고 헷갈려하지 애들은 그냥 넘어간다고요? .... 애들도 은근히 예리하던데요...
개성 만점 무민 친구들의 짜릿한 모험과 성장 이야기!
토베 얀손이 직접 그린 캐릭터들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핀란드에서 나고 자란 토베 얀손은 북유럽의 척박하고 사나운 자연을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합니다. 겨울이 길고 혹독한 핀란드처럼 무민 가족이 살고 있는 무민 골짜기는 겨울이 되면 엄청난 추위에 휩싸이며 모든 것이 눈 아래 파묻혀 버립니다. 책 곳곳에 묘사되는 거칠고 사나운 바다와 기기묘묘한 식물이 가득한 숲을 보며 저 멀리 북유럽의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세밀하고 섬세한 배경과 대조적으로 단순하게 표현된 캐릭터들에는 저마다의 성격과 특징이 뚜렷이 살아 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캐릭터들은 작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지친 나머지 바닥에 쓰러진 스니프의 얼굴이나,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날아가는 스너프킨과 무민트롤의 모습처럼 유머러스하고 재치가 번뜩이는 삽화는 절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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