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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소설가 이외수의 에세이를 통해 70-80년대 작가가 얼마나 극단적인 가난과 싸우며 살았는지를 알고 있었다. ​ 그당시, 그야말로 소설가로서의 그의 인생 초반에 씌여진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러한 것을 자연스레 떠올리기도 했다. 하루에 한끼도 못먹으며, 겨울에 난방도 없는 골방에서 이 글을 쓴건가? 하고. ​ 한편으론 책을 읽으며 아파트가 세상을 다 덮어버리기 전의 우리나라 풍경도 떠올랐다​. 8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서 아파트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거미줄 처럼 이어지는 좁다란 골목골목들과 그곳에 자리한 수많은 단독집들. 그 밤. ​ 소설은 아주 내게 큰 감명이나 인상을 주진 않았다. 방금 전 글에서 언급한 성석제의 참말로 좋은날 처럼. ​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읽으며 인상적인 부분을 더 여러군데 발췌해 놓았다. ​ ​ ​작가의 세상에 대한 깊은 관찰과 고민으로 탄생시킨 작품속으로 잠깐 떠나볼까? ​ --------------------------- 사실 아버지는 여러 가지 동물들을 술 안주로 삼았다. 먹어서 죽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모두 술 안주로 삼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 특히 아버지가 좋아한 것은 뱀이었다. 엄마가 병으로 죽고부터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자주 엄마의 무덤을 찾아 갔는데 그 때마다 아버지의 손에는 소줏병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소주를 엄마보다 더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 ​ ​ ​ --------------------------- 교회는 내게 있어 타향 같은 곳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얼굴에 희망이라는 것을 번들번들하게 칠해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집이었다. 목사와도 집사와도 나는 다른 애들처럼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 이렇게 심심한 곳으로 나를 데리고 오는 계모가 약간은 미웠다. 언제나 나는 전학온 지 며칠 안 되는 녀석처럼 겉돌고 있었다. 그저 졸리운 곳이기만 했다.​​ --------------------------- ​ ​ --------------------------- 우리는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난 우리들 나이 또래 중에서 가장 불행한 환경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동류항으로 삼고, 너무도 어둡고 습기찬 땅에서 재배되고 있는 여러 해 살이 식물에 불과했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토양에 뿌리를 박고 아버지가 부여하는 물을 빨아 올리면서, 그 나태와 무관심의 관찰 기록부에 검사 또는 효자의 기대로 커 나가고 있었다. 결국 우리들은 아버지의 버림받은 한 생애를 위하여 아버지가 원하시는 꽃을, 아버지가 원하는 열매를 만들어 내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들은 불량 품종으로 시들어 가고 있었다​ --------------------------- --------------------------- 다방은 만원이었다. 거의가 젊은 사람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담배 연기 자욱한 이 다방에 앉아 만연된 이산화탄소를 마시며, 다방 조명만큼이나 그늘 끼인 얼굴을 하고 순도 낮은 오십 원어치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오십 원어치의 시간과 오십 원어치의 의자와 오십 원어치의 음악을 빌려 잠시 쉬고 있었다. 레지들이 조금도 웃지 않는 표정으로 통로를 왕래하며 엽차와 눈총과 하품을 덤으로 탁자 위에 날라다 주고 있었다. "미치겠어요. 글이 안 돼서." "미치기가 얼마나 힘들다고. 나도 못 미치는데." "쳇, 자긴 또 뭔데." "나는 천재야. 무엇이든 실패해 버리는 데 천재지. 요즘 계속 덜컥덜컥이야. 어딘가 고장이 난 거지.” ---------------------------
특유의 반어적인 문체로 환상적 이색 공간을 그려내고, 원시 생명에 대한 동경과 순수를 향한 집념을 보여주며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한 이외수. 그가 젊은 날 가난과 절망을 벗 삼아 아픔으로 원고지에 써내려간 중단편 소설들이 새로운 구성을 통해 모두 세권으로 탄생했다.

이외수의 대표 중편 훈장 겨울나기 장수하늘소 를 각각 표제작으로 주옥같은 중단편을 총망라한 이번 소설집에서 우리는 잘 빚은 도기처험 매끄러운 문장 아래 처절한 삶의 아픔과 진실이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불안하고 암울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 혼돈 그 자체인 시대에서 이외수는 확고한 자기 구원의 신념을 전파한다.


훈장
견습 어린이들
꽃과 사냥꾼
개미귀신